근대서화

찬란했던 근대 미술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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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작가

유영완
유영완
작가호 유하
작가명(한자) 柳下 柳永完
작가명(영문) Yoo Young-Wan
생몰년 1892 ~ 1953
작가설명 석정 이정직(石亭 李定稷) 사사.

글씨는 동기창류의 유려한 행서를 위주로 하고 있으며, 시와 문인화에 두루 능통하였다. 문인화의 화제를 살펴보면 정판교의 육분반체를 특유의 행서로 변형하여 나타낸 것이 엿보이기도 한다.
1917년 조선미술전람회에 특선하였으며, 1928년에는 행서와 초서가 입선하였다. 작품에 ‘夢中夢’이라는 두인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이후 아들은 유근상의 작품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성격이 곧아 세속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청렴결백한 생활을 일관하였으며, 그의 작품세계는 아들 유근상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다.
현지 글씨는 동기창류의 행서작품이 주로 남아 있으며, 문인화 중에서도 난죽에 뛰어났음을 볼 수 있다. 특히 묵죽화는 청대의 문인화가 정판교의 화풍과 조선후기 자하 신위 등의 화풍을 계승하고 있는 듯 하다. 한편 전북서단의 테두리에서 보면 석정의 문하에서 많은 묵죽화 작품을 남긴 벽하 조주승의 화풍과 비교하여 훨씬 간결해진 느낌이 들지만 아직 사의적 표현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로써 벽하 조주승과 그의 아들 심농 조기석의 화풍, 그리고 유근상의 작품에서 전북 문인화단의 한 맥을 살펴볼 수 있으며, 훗날 유재 송기면에서 강암 송성용으로 이어지는 보다 사의적인 묵죽화와 좋은 대비를 이룬다.
가난하지만 예술을 상품화하지 않은 서예가로서 해서와 묵죽의 세계는 독보적이었다. 특히 해서체는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정자 인쇄체의 표본이 되고 있으며 소위 서예가들이 말하는 육탈된 서체는 신필의 경지를 이룩했다. 1917년 선전에 묵화로 특선한 것도 친구가 몰래 응모한 것으로 그 이후 초야에 묻혀 작품이 속화되는 것을 싫어했다.